⋯1번째 줄 근처
+추가: ## 개요
+추가: 엑스박스(Xbox)는 마이크로소프트가 개발·제조한 가정용 비디오 게임 콘솔이다. 엑스박스 시리즈의 첫 번째 제품으로, 2001년 11월 15일 북아메리카에서 처음 출시되었고 2002년 호주·유럽·일본으로 확대되었다[1][2]. 6세대 콘솔로서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2, 세가 드림캐스트, 닌텐도 게임큐브와 경쟁했다[2]. 1993년 아타리 재규어 이후 미국 기업이 내놓은 첫 주요 콘솔이기도 하다[2]. 표준 PC 부품을 기반으로 설계되어 인텔 펜티엄 III CPU와 엔비디아 지포스 3 기반 GPU를 탑재했으며, 윈도우 2000과 DirectX를 변형한 운영체제를 사용한다[2]. 콘솔 최초로 내장 하드 디스크를 갖추고 내장 이더넷 포트로 광대역 인터넷을 지원했으며, 2002년 유료 온라인 서비스 엑스박스 라이브를 시작했다[2]. 출시 타이틀인 헤일로: 컴뱃 이볼브드의 흥행에 힘입어 북아메리카에서 출시 초기 150만 대, 전 세계 누적 2,400만 대(북아메리카 1,600만 대)가 팔렸으나, 제조 원가가 소매가보다 높아 마이크로소프트는 수명 주기 동안 40억 달러 이상 적자를 봤다[2]. 일본에서는 본체 크기가 크고 미국 취향 게임이 많아 부진했다[2]. 생산은 2005년 중단되었고, 2005년 엑스박스 360, 2013년 엑스박스 원, 2020년 엑스박스 시리즈 X/S로 계보가 이어진다[2].
+추가:
+추가: ## 역사
+추가:
+추가: ### 개발 배경
+추가: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 PC용 게임 퍼블리싱(마이크로소프트 플라이트 시뮬레이터,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등)으로 성공을 거두고 DirectX를 통해 하드웨어 직접 접근 기술을 확보했으나, 거실 콘솔 시장은 소니 플레이스테이션이 장악하고 있었다[2][3]. 1999년 3월 소니가 플레이스테이션 2(PS2)를 발표하며 "가정 엔터테인먼트 관문"이자 "데스크톱 PC 대체"를 표방하자, 빌 게이츠는 이를 윈도우 PC 사업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하고 콘솔 시장 진입을 결정했다[2][3]. 게이츠는 소니 CEO 이데이 노부유키에게 콘솔용 프로그래밍 소프트웨어 개발을 제안했으나 거절당했고, 닌텐도 인수 타진(야마우치 히로시, 다케다 겐요)도 무산되었다[2][3].
+추가:
+추가: 1998년 DirectX 팀 엔지니어 4명(케빈 바커스, 셰이머스 블랙클리, 테드 헤이스, 오토 버크스)과 윈도우 소프트웨어 아키텍트 냇 브라운이 DirectX 기술 기반 콘솔 아이디어를 논의하기 시작했다[2][3]. 프로젝트 코드명은 미드웨이 해전을 인용한 "미드웨이"로, 소니를 제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2][3]. 1999년 3월 30일 첫 개발 회의에서 윈도우 2000과 DirectX 8.1 기반으로 PC 개발자의 이식 용이성과 높은 처리 능력을 목표로 삼았다[2][3]. 블랙클리는 PC 기술 기반이 콘솔의 기술적 장벽을 없애 창의성을 확장한다고 주장했다[2][3].
+추가:
+추가: ### 내부 논쟁과 결정
+추가: 웹TV 인수 팀(실리콘 밸리 엔지니어들)은 윈도우 CE 기반 어플라이언스 형태를 주장했고, 크레이그 문디 임원이 이들을 지지했다[2][3]. 반면 DirectX 팀은 x86 아키텍처, 오프더셸프 GPU, 하드 디스크 드라이브 등 PC 부품 재사용이 저렴하고 연간 업데이트가 쉽다고 맞섰다[2][3]. 마이크로소프트 게임 부문 책임자 에드 프라이스가 하드 드라이브가 기술적 우위를 줄 것이라며 DirectX 팀을 지지했다[2][3]. 1999년 5월 5일 20여 명 참석 회의에서 게이츠에게 양측이 발표했고, 게이츠는 온라인 접근 직접 구현을 이유로 DirectX 팀 안을 채택했다[2][3]. 윈도우 CE는 DirectX와 호환되지 않는다는 점도 작용했다[2][3]. 웹TV 팀은 초기 출시 단계에서 여전히 역할을 맡았다[2][3].
+추가:
+추가: ### 하드웨어 확정과 생산
+추가: 릭 톰슨과 로버트 J. 바흐가 디자인을 총괄했다[2][3]. DirectX 팀은 델 컴퓨터를 구매해 내부 부품으로 프로토타입을 제작했다[2][3]. 초기엔 서드파티 제조 위탁을 고려했으나 직접 생산이 불가피해 비용이 크게 늘었고, 프로젝트 별칭 "관 상자(Coffin Box)"가 생길 만큼 내부 우려가 컸다[2][3]. 2000년 2월 14일 "발렌타인 데이 학살"로 불리는 회의에서 게이츠가 비용 증가와 윈도우 소외 우려로 격렬히 항의했으나, 소니 경쟁 제품임을 상기시킨 뒤 마케팅 예산과 함께 승인했다[2][3]. 전화 접속 대신 이더넷 포트를 채택한 것도 논란이었으나, 엑스박스 라이브와 친구 간 원격 플레이를 고려한 결정이었다[2][3].
+추가:
+추가: CPU는 AMD와 협의 중이었으나 2001년 1월 공개 직전 인텔 펜티엄 III로 전환했으며, 이는 AMD에 사전 통보되지 않았다[2][3].
+추가:
+추가: ### 명칭 결정
+추가: "Windows Entertainment Project(WEP)", "Microsoft Total Gaming(MTG)", "Microsoft Interactive Network Device(MIND)", "Microsoft Interactive Center(MIC)" 등 약어와 "DirectX Box"가 후보였다[2][3]. 헤이스가 농담으로 "XXX-Box", "DirectXXX-Box"를 제안하기도 했다[2][3]. 이메일 대화 중 "DirectX Box"가 "Xbox"로 줄었고, 개발팀 선호로 확정되었으나 마케팅 부서는 "11-X" 또는 "Eleven-X"를 주장했다[2][3]. 포커스 그룹 테스트에서 "Xbox"를 넣어 인기 없음을 입증하려 했으나 오히려 가장 인기 있는 이름으로 나와 공식 명칭이 되었다[2][3].
+추가:
+추가: ### 컨트롤러 설계
+추가: 컨트롤러 회로 기판이 먼저 제작된 상태에서 물리 설계를 시작했고, 소니 공급업체 미쓰미 전기에 듀얼쇼크 2 같은 접이식 적층 기판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해 부피가 소니 컨트롤러의 약 3배로 커졌다[2][3]. 이 초기 컨트롤러(별명 "패티", 이후 "듀크")는 일본에서 출시되지 않았고, 일본엔 더 작은 "컨트롤러 S"(코드명 "아케보노")가 기본 제공되었다[2][3]. 컨트롤러 S는 2002년까지 전 지역 기본 컨트롤러로 교체되었고, 대형 컨트롤러는 액세서리로 남았다[2][3].
+추가:
+추가: ### 양산과 초기 불량
+추가: 플렉트로닉스 도움을 받아 멕시코 과달라하라에 공장을 짓고 양산을 시작했다[2][3]. 초기 생산분 불량률 약 25%를 플렉트로닉스가 수리했고, 하드웨어 개정으로 불량률을 낮췄다[2][3].
+추가:
+추가: ### 초기 발표와 콘텐츠 확보
+추가: 게이츠는 1999년 말 인터뷰에서 첫 언급을 했고, 2000년 3월 10일 게임 개발자 회의(GDC) 기조연설에서 프로토타입과 데모로 공식 발표했다[2][3]. 하드 드라이브와 이더넷 포트, 쉬운 개발 도구로 개발자들에게 호평받았다[2][3].
+추가:
+추가: 세가가 드림캐스트 판매 부진(일렉트로닉 아츠 이탈, PS2 일본 출시) 속에 이사오 오카와 회장과 드림캐스트 게임 호환을 논의했으나 세가넷 온라인 서비스 문제로 결렬되었다[2][3]. 일렉트로닉 아츠, 닌텐도, 스퀘어 에닉스, 미드웨이 인수 시도도 실패했다[2][3]. 대신 베데스다 게임 스튜디오와 테크모를 설득해 《엘더 스크롤 III: 모로윈드》, 《데드 오어 얼라이브 3》를 독점 확보했다[2][3].
+추가:
+추가: 윈도우 게임 중심이던 Games Group을 윈도우·엑스박스 겸용 Microsoft Games 사업부로 개편하고 스튜디오 인수를 시작했다[2][3]. 2000년 6월 번지 인수가 대표적이며, 《헤일로: 컴뱃 이볼브드》는 PC 출시에서 엑스박스 독점 출시 타이틀로 바뀌어 콘솔 판매 견인차 역할을 맡았다[2][3].
+추가:
+추가: ### 공식 공개와 출시
+추가: 2001년 1월 3일 CES 2001(라스베이거스)에서 게이츠와 프로레슬러 드웨인 존슨이 공식 공개했다[2][3]. 5월 E3 2001에서 출시일과 가격을 발표했고, 《헤일로》, 《데드 오어 얼라이브 3》 등 출시 타이틀이 공개되었다[2][3].
+추가:
+추가: 2001년 9·11 테러 여파로 여행이 제한되어 과달라하라 공장 테스트 인력 파견이 어려워졌고, 현지 출하 검사로 대체해 출시 일정을 맞췄다[2][3].
+추가:
+추가: 2001년 11월 15일 자정 공식 출시(닌텐도 게임큐브보다 3일 빠름)[2][3]. 전날 밤 뉴욕 타임스퀘어 토이저러스 플래그십 스토어 그랜드 오픈 행사에서 1,000대 선판매가 있었고, 게이츠가 직접 첫 콘솔을 판매하고 대기자들과 게임을 즐겼다[2][3].
+추가:
+추가: ### 홍보
+추가: 2002년 영국 독립 텔레비전 위원회(ITC)가 "불쾌하고 충격적이며 저속하다"는 민원을 이유로 엑스박스 TV 광고를 금지했다[2][3]. 광고는 산모가 아기를 낳자 아기가 창밖으로 발사체처럼 날아가 공중에서 급속히 늙고, 노인이 무덤에 추락하며 "인생은 짧다. 더 많이 즐겨라"는 슬로건으로 끝나는 내용이었다[2][3].
+추가:
+추가: ### 생산 중단과 후속 기종
+추가: 후속작 엑스박스 360은 2005년 5월 12일 MTV에서 첫 발표되었고, 11월 22일 북아메리카 출시되었다[2][3]. 엔비디아가 2005년 8월 엑스박스용 GPU 생산을 중단하며 신규 생산이 끝났다[2][3]. 일본 마지막 게임은 2006년 3월 《더 킹 오브 파이터즈 네오웨이브》, 유럽 마지막 게임은 2007년 6월 《샤올린 쇼다운》, 북아메리카 마지막 게임은 2008년 8월 《매든 NFL 09》였다[2][3]. 보증 지원은 2009년 3월 2일, 엑스박스 라이브 지원은 2010년 4월 15일 종료되었다[2][3].
+추가:
+추가: 엑스박스 360은 공식 하드 드라이브 보유 시 제한적 라이브러리 하위 호환을 지원했으며, 2007년 11월까지 호환 타이틀이 추가되었다[2][3]. 저장 파일 이관은 불가능했고, 엑스박스 라이브를 통한 온라인 플레이는 2010년 4월 15일 중단되었으나 XLink Kai 같은 터널링 소프트웨어로 시스템 링크 온라인 플레이는 여전히 가능했다[2][3]. 2017년 E3에서 엑스박스 원의 제한적 하위 호환 지원도 발표되었다[2][3].
+추가:
+추가: ## 평가
+추가:
+추가: 엑스박스는 북아메리카에서 기록적 출시(연말 150만 대, 2002년 4월까지 100만 대 추가)를 달성했고, 《헤일로: 컴뱃 이볼브드》가 시스템 판매를 견인했다[2][3]. 전 세계 2,400만 대 판매로 게임큐브와 드림캐스트를 앞섰으나, 플레이스테이션 2에는 크게 밀렸다[2][3]. 제조 원가 초과로 40억 달러 이상 적자를 냈고, 꾸준한 흑자 전환에는 실패했다[2][3]. 서양 시장 외 지역, 특히 일본에서 본체 크기와 미국 중심 게임 라인업으로 부진했다[2][3].
+추가:
+추가: 하드웨어 면에서는 내장 하드 디스크, 이더넷 포트, PC 기반 아키텍처로 개발 용이성과 온라인 인프라 선도 평가를 받았으나, 초기 컨트롤러 크기와 DVD 재생용 별도 IR 키트 필요성은 단점으로 지적되었다[2][3]. 초기 DVD-ROM 드라이브 불량률과 엔비디아 칩 가격 분쟁도 운영상 과제로 남았다[2][3].
+추가:
+추가: 소프트웨어·서비스 면에서는 엑스박스 라이브가 콘솔 온라인 게임의 표준을 제시했고, 《헤일로 2》 등 킬러 타이틀이 1인칭 슈팅과 온라인 콘솔 게임 대중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2][3]. 대시보드 미디어 기능(CD 리핑, 맞춤 사운드트랙)도 당시로선 선진적이었다[2][3].
+추가:
+추가: 후속 기기들에 하위 호환 라이브러리가 계승되었고, 2017년 엑스박스 원 하위 호환 발표로 오리지널 타이틀 일부가 현대 플랫폼에서도 플레이 가능해졌다[2][3].
+추가:
+추가: 이 문서는 GGWiki AI가 공개 자료(아래 출처)를 조사해 새로 쓴 초안입니다. 틀린 내용은 편집하거나 이의 제기로 알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