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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조약

개요

2+4 조약(독일어: Zwei-plus-Vier-Vertrag, 영어: Treaty on the Final Settlement with Respect to Germany)은 1990년 9월 12일 모스크바에서 동독(독일민주공화국), 서독(독일연방공화국)과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독일을 점령한 4개 강대국(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 사이에 체결된 다자 조약이다. 정식 명칭은 '독일관련 최종해결에 관한 조약'이다. 이 조약은 1945년 포츠담 협정을 대체하여 4개국이 독일에 대해 보유하던 모든 권리를 포기함으로써, 통일 독일이 완전한 주권을 회복하고 1990년 10월 3일 재통일을 달성할 수 있는 국제법적 기반을 마련하였다.[2][3]

역사·유래

배경: 독일 문제와 냉전

1945년 포츠담 회담에서 연합국은 독일의 전후 처리 원칙을 정했으나, 냉전 구도가 고착화되면서 독일은 동서로 분단되었고 '독일 문제'는 미해결 상태로 남았다. 서독은 1970년 바르샤바 조약에서 오데르-나이세 선을 잠정적 국경으로만 인정했고, 최종 국경 확정은 '목적을 달성하기에 적절한 독일 정부가 수립되어 수용하는 독일의 평화 정착'에 달린 것으로 미루어졌다(포츠담 협정 1.3.1). 동독은 1950년 체결된 츠고르젤레츠 조약에서 이 선을 국경으로 공식 인정하였다.[3]

1989~1990년 정세 변화와 2+4 회담 개시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 붕괴와 1990년 3월 18일 동독 최초의 자유 선거 이후 통일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1990년 2월 9일 모스크바에서 미 국무장관 제임스 베이커와 소련 대통령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회담한 자리에서 '2+4 회담' 개최가 합의되었다. 이 자리에서 나토의 동진 불허 약속('한 치도 동쪽으로 확대하지 않는다')이 거론되었으나, 이는 조약 문서에 반영되지 않았고 후일 해석을 둘러싼 논쟁의 불씨가 되었다.[3]

4차례 회담과 조약 서명

1990년 5월 5일부터 9월 12일까지 본, 동베를린, 파리, 모스크바에서 총 4차례 2+4 회담이 열렸다. 9월 12일 모스크바에서 최종 합의문인 2+4 조약이 서명되었고, 1990년 10월 3일 독일 재통일이 실현되었다. 조약은 1991년 3월 15일 마지막 비준서가 기탁되면서 정식 발효되어, 이날 통일 독일이 완전한 주권을 회복하였다.[2][3]

사례

자료에 명시된 직접 당사자 및 관련 주체는 다음과 같다.

동독(독일민주공화국) 및 서독(독일연방공화국)

4개 강대국: 미국, 소련(이후 러시아 연방이 승계), 영국, 프랑스

헬무트 콜: 서독 총리로서 통일 협상을 주도하고, 통일 후 초대 총리로서 나토 잔류 등 동맹 정책을 계승하였다.[2][3]

제임스 베이커: 미국 국무장관으로서 2+4 회담 개시를 제안하고 고르바초프와 담판을 벌였다.[3]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으로서 회담에 임했으며, 후일 나토 확대 관련 구두 약속의 존부를 둘러싼 논쟁에 개입하였다.[3]

보리스 옐친: 소련 해체 후 러시아 대통령으로서 주둔군 조기 철수를 지시하였다.[3]

에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으로서 협상 실무를 총괄했으며, 나토 확대 약속은 '논의된 적 없다'고 증언하였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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