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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 개요
추가: 제2차 세계 대전(第二次世界大戰, World War II)은 1939년 9월 1일부터 1945년 9월 2일까지 연합국(Allies)과 추축국(Axis powers) 사이에 벌어진 전 지구적 무력 분쟁이다[1][2][3]. 당시 강대국 전부와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참전해 두 개의 적대적 군사동맹이 형성되었으며, 30개국 이상에서 1억 명이 넘는 군인이 직접 전투에 투입된 총력전 양상을 띠었다[2]. 참전국은 경제·산업·과학 역량 전체를 전쟁 수행에 동원해 민간 자원과 군사 자원의 경계가 사실상 사라졌으며, 항공기가 전략폭격과 핵무기 투하 등 전쟁의 핵심 수단으로 자리잡았다[2]. 인류 역사상 사망자가 가장 많은 전쟁으로, 총 사망자는 6,000만~7,500만 명으로 추산되며 이 중 다수가 민간인이었다[2][3]. 홀로코스트를 비롯한 대량학살, 기아, 학살, 질병 등으로 수천만 명이 추가로 목숨을 잃었다[2][3]. 추축국이 패배하면서 독일과 일본이 연합국에 점령당했고, 전범 재판이 열렸다[2][3]. 전후 국제 협력을 위해 유엔이 창설되었고, 미국·소련·영국·프랑스·중국 5개 강대국이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 되었다[2][3]. 미국과 소련이 초강대국으로 부상하며 냉전 구도가 형성되었고, 유럽 열강의 세력 약화로 아시아·아프리카의 탈식민지화가 가속화되었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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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 역사·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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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 개전일과 종전일을 둘러싼 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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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통상적인 개전일은 1939년 9월 1일 나치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보나, 학자마다 견해가 갈린다[2][3]. A. J. P. 테일러는 중일전쟁(1937년 7월 7일)과 유럽 전쟁이 1941년에야 하나의 전쟁으로 합쳐졌다고 주장했고, 앤서니 비버는 1939년 5~9월 할힌골 전투를 기점으로 삼기도 한다[2]. 제2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1935년 10월 3일)이나 스페인 내전(1936~1939년)을 서막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2][3]. 종전일 역시 1945년 8월 15일(일본 휴전 수락), 9월 2일(항복문서 서명),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1990년 독일 최종해결 조약, 1956년 일소공동선언 등 여러 시점이 병존한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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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의 유럽 정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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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제1차 세계 대전 결과 오스트리아-헝가리·독일 제국·오스만 제국이 해체되고 소련이 수립되었으며, 베르사유 조약으로 독일은 본토 영토 13%와 전 식민지를 상실하고 군비 제한·배상금 부과·합병 금지를 강요받았다[2][3]. 1918~1919년 11월 혁명으로 바이마르 공화국이 들어섰으나 우익·좌익 극단 세력과 충돌이 끊이지 않았다[2][3]. 이탈리아는 전승국임에도 약속된 영토를 얻지 못해 불만이 컸고, 1922~1925년 베니토 무솔리니의 파시즘 운동이 정권을 장악해 "신로마 제국" 건설을 내세운 확장주의 외교를 펼쳤다[2][3]. 아돌프 히틀러는 1923년 정변 실패 뒤 1933년 총리에 올라 민주주의를 폐기하고 대규모 재무장을 추진했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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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 아시아의 긴장 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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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중국국민당이 1920년대 북벌로 명목상 통일을 이뤘으나 곧 내전에 휩싸였다[2][3]. 1931년 일본 제국이 만주사변을 일으켜 만주를 점령하고 괴뢰국 만주국을 세웠으며, 국제연맹의 비난에 탈퇴했다[2][3]. 1933년 탕구 협정으로 일시 휴전했으나 1936년 시안 사건 뒤 국공합작이 성립되어 대일 연합전선이 형성되었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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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 전쟁 직전의 주요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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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침공(1935~1936)** 이탈리아가 에티오피아를 점령해 이탈리아령 동아프리카로 병합했으며, 국제연맹의 집단안전보장 체제가 무력함이 드러났다[2][3]. 영국·프랑스의 제재는 미온적이었고, 이탈리아는 이후 독일의 오스트리아 병합을 묵인했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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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스페인 내전(1936~1939)**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국민파를, 소련이 공화정을 지원했다[2][3]. 이탈리아는 지상군 7만여 명, 항공기 720여 기를 파견해 독일보다 큰 규모로 개입했으며, 양국은 신무기·전술을 실전 검증하는 장으로 삼았다[2][3]. 1939년 4월 국민파 승리 뒤 프랑코 정권은 공식 중립을 표방했으나 추축국에 우호적이었고, 동부전선에 청색사단을 파병했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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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중일전쟁(1937~1945)** 1937년 7월 루거우차오 사건을 계기로 일본이 전면 침공을 개시했다[2][3]. 소련이 중소불가침조약을 맺고 군수 지원을 시작해 중독합작은 사실상 종료되었다[2]. 일본군은 타이위안·상하이·난징을 차례로 점령했고, 난징 함락 뒤 수만~수십만 명의 민간인·포로가 학살당했다[2][3]. 1938년 타이얼좡 전투에서 중국군이 첫 대승을 거두었으나 쉬저우·우한이 차례로 함락되었고, 중국 정부는 충칭으로 천도해 항전을 이어갔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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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소련-일본 국경분쟁(1930년대 중후반)** 만주국 관동군과 소련·몽골군이 할힌골 전투(1939) 등에서 충돌했다[2][3]. 일본 육군의 북진론이 패배와 중일전쟁 장기화, 독소 불가침 조약으로 좌절되자, 해군 주도의 남진론으로 선회해 1941년 4월 소련-일본 중립조약을 체결하고 동남아·태평양 진출로 방향을 틀었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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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 유럽의 점령과 조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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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1938년 3월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병합(안슐루스)했고, 9월 뮌헨 협정으로 주데텐란트를 할양받았다[2][3]. 1939년 3월 체코슬로바키아 잔여부를 뵈멘-메렌 보호령과 슬로바키아 공화국으로 분할 점령했으며, 3월 20일 리투아니아 클라이페다 지역(메멜란트)을 병합했다[2][3]. 영국·프랑스는 폴란드 독립을 보장했고, 루마니아·그리스로 보장을 확대했다[2][3]. 1939년 4월 이탈리아가 알바니아를 점령했고, 5월 독일-이탈리아 강철조약이 체결되었다[2][3]. 8월 23일 독소불가침조약(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이 체결되어 폴란드·발트 3국·베사라비아 등 동유럽의 영향권이 비밀리에 분할되었고, 독일은 양면전쟁 부담을 덜게 되었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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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 규제·논란·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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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 전범 재판과 전후 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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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뉘른베르크 재판(주요 나치 지도자), 도쿄 재판(일본 전범), 각국 군사법정에서 전범 처벌이 이뤄졌다[2][3]. 독일 최종해결 조약(1990)으로 동서독 통일과 영토·배상 문제가 매듭지어졌으나, 일본-소련 간 정식 평화조약은 미체결 상태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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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 전쟁 책임과 역사인식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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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일본의 교과서 기술·야스쿠니 신사 참배·위안부 문제·난징대학살 규모 등을 둘러싸고 한국·중국 등 피해국과 외교 마찰이 지속된다[2][3]. 독일은 나치 과거 청산과 배상·사과를 제도화했으나, 극우 세력의 역사수정주의 시도가 잔존한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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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 핵무기 사용의 윤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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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가 조기 종전·인명 피해 감소에 기여했다는 주장과, 비전투원 대량살상·국제법 위반·냉전 핵경쟁 시발점이라는 비판이 대립한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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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 전략폭격의 적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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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독일·일본 도시 야간폭격(드레스덴·도쿄·함부르크 등)이 군사적 필요성 대비 민간인 피해 과다로 전쟁범죄 여부 논란이 있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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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 식민지 해방과 신질서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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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전쟁으로 유럽 열강 국력 소진→아시아·아프리카 독립운동 가속→유엔 창설·냉전 구도·탈식민지화·유럽 통합(ECSC→EEC→EU) 등 현대 국제질서의 틀이 마련되었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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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 사망자 통계의 불확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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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전체 사망자 6,000만~7,500만 명 추정치 출처·집계 방식·민간인·군인 분류 기준에 따라 편차가 크며, 소련·중국·폴란드 등 통계 기반이 취약한 지역일수록 불확실성이 높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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