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마스터스(Masters)는 1975년부터 매년 개최되는 프로 스누커 초청 대회다. 세계 스누커 선수권 대회에 이어 두 번째로 오래된 프로 스누커 대회이며, 영국 챔피언십, 세계 선수권 대회와 함께 스누커의 '트리플 크라운' 3대 메이저 대회로 꼽힌다. 세계 스누커 투어(World Snooker Tour) 주관으로 열리며, 랭킹 포인트가 걸리지 않는 비랭킹 대회임에도 가장 권위 있는 대회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2026년 대회에서는 카이런 윌슨이 존 히긴스를 10-6으로 꺾고 첫 마스터스 우승을 차지했다.[1][2]
역사·유래
1975~1983년: 태동기
초대 대회는 1975년 런던 웨스트 센터 호텔에서 열렸으며, 담배 회사 벤슨 앤 헤지스(Benson & Hedges)가 후원했다. 당시 세계 상위 10명의 선수만 초청받았으며, 존 스펜서가 결승에서 레이 리어던을 9-8로 꺾고 초대 챔피언이 됐다. 결승전은 재스팟 블랙(재배치된 검은 공) 승부까지 가는 접전이었다. 이듬해 대회는 뉴 런던 극장으로, 1979년에는 웸블리 컨퍼런스 센터로 장소를 옮겼다. 초청 인원은 1981년 12명, 1983년 16명으로 늘어났다.[2]
1984~2003년: 정착과 전성기
1984년부터 세계 랭킹 상위 16명이 자동 초청되는 방식이 정착됐다. 같은 해 커크 스티븐스가 지미 화이트와의 준결승에서 대회 사상 첫 147점 최대 브레이크를 기록했다. 1988년 결승에서는 마이크 할렛이 스티브 데이비스에게 0-9로 완패하며 마스터스 결승 사상 유일무이한 '화이트워시' 패배를 당했다.
스티븐 헨드리는 1989년 첫 출전부터 1993년까지 5연패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으며, 1994년 앨런 맥매너스에게 결승전 최종 프레임에서 패하기 전까지 대회 무패 행진을 이어갔다. 할렛은 1991년 다시 결승에 올랐으나 헨드리에게 8-9로 석패했다.
1990년부터 와일드카드 제도가 도입돼 15, 16번 시드 선수가 와일드카드 선수와 예선전을 치르게 됐다. 1991년부터는 벤슨 앤 헤지스 챔피언십 우승자에게 와일드카드 한 장이 주어졌고, 나머지 한 장은 연맹이 재량으로 배정했다.
1997년 결승에서는 로니 오설리반이 8-4로 앞서다 관중 난입 사건(스트리커) 발생 후 집중력을 잃고 스티브 데이비스에게 연속 6프레임을 내주며 8-10으로 역전패했다. 1998년 결승은 마크 윌리엄스가 6-9 열세를 뒤집고 헨드리를 10-9로 꺾은 재스팟 블랙 승부였다. 2000년 결승에서는 켄 도허티가 147점 도전 중 마지막 검은 공을 놓치는 진기록을 남겼으나 결국 매슈 스티븐스에게 패했다.[2]
2004년 이후: 후원사 변화와 트로피 개명
2003년 영국 내 담배 광고 규제로 벤슨 앤 헤지스가 후원을 중단했다. 2004년 무후원 대회를 거쳐 2005년 라일리스 클럽, 2006~2009년 사가 인슈어런스(SAGA Insurance), 2010년 포커스타즈닷컴, 2011년 래드브룩스 모바일, 2012년 BGC 파트너스, 2013년 베트페어, 2014~2020년 다파벳, 2021년 벳프레드, 2022년 카주(Cazoo) 등이 차례로 후원했다.
2006년 웸블리 컨퍼런스 센터가 철거되면서 2007년부터 웸블리 아레나, 2012년부터 알렉산드라 팰리스로 장소를 옮겼다. 2006년 폴 헌터가 27세로 사망한 후 지미 화이트 등이 대회나 트로피를 헌터의 이름으로 바꿀 것을 제안했으나, 당시 월드 스누커는 '폴 헌터 장학금'으로 대신하겠다며 거절했다. 9년 뒤인 2016년 4월 20일, 배리 헌 회장이 "우리가 실수했다"고 인정하며 2017년 대회부터 트로피를 '폴 헌터 트로피'로 개명했다.
로니 오설리반은 2004~2007년 4년 연속 결승에 올라 2005년, 2007년 우승했다. 2004년 결승에서는 폴 헌터가 2-7 열세를 뒤집고 5번의 센추리 브레이크를 앞세워 10-9로 극적인 3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2006년 결승에서는 오설리반과 존 히긴스가 명승부를 펼쳤으나 히긴스가 최종 프레임 64점 클리어런스로 우승했다. 2007년 오설리반은 딩 준후이를 10-3으로 꺾고 우승한 뒤 눈물을 흘리던 딩을 위로하는 장면으로 화제가 됐다. 일주일 전 딩은 와일드카드 라운드에서 앤서니 해밀턴을 상대로 대회 사상 두 번째 147점을 기록했다.
2011년 대회는 아시아 선수 간 첫 결승(딩 준후이 vs 마크 셀비)이었으나 셀비가 우승했다. 2017년 오설리반이 7번째 우승으로 헨드리의 6회 우승 기록을 경신했고, 2019년 13번째 결승 진출 기록을 세웠으나 저드 트럼프에게 4-10으로 패했다. 2020년 스튜어트 빙엄이 43세 최고령 우승 기록을 세웠고, 2021년 코로나19로 무관중 대회에서 옌 빙타오가 1995년 오설리반 이후 최연소 우승자가 됐다. 2022년 닐 로버트슨, 2023년 저드 트럼프가 우승했고, 2024년 오설리반이 48세 40일 최고령 우승 기록을 갈아치우며 8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2025년 숀 머피가 준결승 147점 포함 활약으로 2번째 우승을 거뒀다.[2]
작동 방식과 유형
참가 자격과 시드 배정
1984년 이후 기본적으로 세계 랭킹 상위 16명이 참가한다. 디펜딩 챔피언은 1번 시드, 현 세계 챔피언은 2번 시드(다른 선수일 경우)를 받고, 나머지 선수는 랭킹 순서대로 시드를 배정받는다. 디펜딩 챔피언과 세계 챔피언이 통상 상위 16위 안에 들기 때문에 사실상 랭킹 16위까지가 참가한다. 예외적으로 세계 챔피언 랭킹이 16위 밖일 경우(2006년 숀 머피 21위, 2014년 오설리반 24위 등) 16위 선수가 초청되지 않거나, 선수 출장 거부·정지·부상·코로나19 등으로 결원 발생 시 차순위 선수가 초청된다. 2025년에는 디펜딩 챔피언 오설리반 불참으로 17위 닐 로버트슨이, 2026년에는 오설리반 건강상 이유로 17위 크리스 웨이클린이 대체 출전했다.[2]
경기 방식 변천
1984년과 1986~1990년은 시드 순서대로 1번-16번, 2번-15번 식으로 대진이 짜였다. 1985년은 별도 방식이었다. 1990년 와일드카드 라운드 도입으로 15, 16번 시드는 와일드카드전을 이겨야 16강에 들 수 있었고, 16강에서 1, 2번 시드와 바로 만나는 구조였다. 1991년부터 9~16번 시드가 1~8번 시드와 무작위 추첨으로 대진이 바뀌었다.
경기 프레임 수는 1996년 16강과 8강이 9프레임에서 11프레임으로, 결승이 17프레임에서 19프레임으로 늘었다. 와일드카드전도 1999년 9프레임에서 11프레임으로 확대됐다. 와일드카드 라운드는 1990~2010년 21개 대회 동안 운영됐으며(2007년만 3경기), 2011년 폐지됐다. 와일드카드 라운드 출전 선수 중 우승자는 없었으나 존 히긴스(1995년)와 딩 준후이(2007년)가 준우승했다. 와일드카드전을 치른 시드 선수 중 지미 화이트(2004년)와 마크 윌리엄스(2010년)가 4강에 오른 바 있다.[2]
사례
역대 다승 선수
로니 오설리반이 8회(1995, 2005, 2007, 2009, 2014, 2016, 2017, 2024) 우승으로 최다 기록을 보유한다. 19세 69일(1995년) 최연소, 48세 40일(2024년) 최고령 우승 기록도 동시에 갖고 있다. 스티븐 헨드리가 6회(1989~1993 5연패 포함, 1996) 우승했고, 스티브 데이비스, 폴 헌터, 마크 셀비, 클리프 소번이 각각 3회 우승했다. 알렉스 히긴스, 존 히긴스, 숀 머피, 닐 로버트슨, 저드 트럼프, 마크 윌리엄스가 2회씩 우승했다. 존 히긴스는 2026년 기준 32회 출전으로 최다 출전 기록을 보유한다.[2]
147점 최대 브레이크 기록
대회 역사상 총 6회의 147점 브레이크가 나왔다. 커크 스티븐스(1984년), 딩 준후이(2007년), 마르코 푸(2015년), 딩 준후이·마크 앨런(2024년 나란히 기록), 숀 머피(2025년 준결승)가 주인공이다. 딩 준후이는 두 차례 기록한 유일한 선수다.[2]
규제·논란·평가
담배 광고 규제와 후원 공백
영국의 담배 광고 금지 법안으로 2003년 장기 후원사 벤슨 앤 헤지스가 철수하면서 대회는 후원사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 2004년 무후원, 2009년 사가 인슈어런스 철수 후 무후원 등 공백기가 있었으나, 이후 베팅·게이밍 업체들이 주요 후원사로 나섰다.[2]
폴 헌터 트로피 개명 논란
2006년 폴 헌터 사망 후 선수들과 팬들, 헌터의 미망인까지 트로피 개명을 강력히 요청했으나, 월드 스누커 이사회는 만장일치로 '폴 헌터 장학금' 제정으로 대체하겠다며 거절했다. 9년간 논란이 지속되다 2016년 배리 헌 회장이 "우리가 실수했다(messed up)"고 공개 사과하며 2017년 대회부터 트로피를 '폴 헌터 트로피'로 개명했다. 이 과정에서 스누커 행정 기구의 보수적 의사결정과 팬 여론 간 괴리가 드러났다.[2]
와일드카드 제도 폐지
1990~2010년 운영된 와일드카드 제도는 신인·유망주에게 기회를 준다는 취지였으나, 와일드카드 출전 선수가 우승한 사례가 없고 예선 통과자가 16강을 넘지 못하는 등 실효성 논란이 있었다. 2011년 와일드카드 제도와 별도 예선 대회가 동시에 폐지되면서 현재는 순수 상위 16명 초청 대회로 굳어졌다.[2]
코로나19 팬데믹 대응
2021년 대회는 코로나19 확산으로 무관중으로 치러졌으며, 저드 트럼프와 잭 리소스키가 양성 판정으로 기권하고 조 페리, 게리 윌슨이 대체 출전했다. 앤서니 맥길은 17위 자격에도 불구하고 이동을 거부해 불참했다. 2022년부터 관중 입장이 재개됐다.[2]
승부조작 조사와 선수 교체
2023년 옌 빙타오와 자오 신퉁이 승부조작 조사로 출전 정지되면서 데이비드 길버트와 호세인 바파이이가 대체 출전했다. 이는 스누커계의 반부패 규정이 주요 대회 참가 자격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사례로 기록됐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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