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편집이의 제기
플레이스테이션(PlayStation)은 일본 대기업 소니의 자회사인 소니 인터랙티브 엔터테인먼트(SIE)가 소유 및 생산하는 비디오 게임 브랜드다. 주력 제품은 브랜드 이름으로 출시되는 일련의 가정용 비디오 게임기이며, 휴대용 기기, 온라인 서비스, 잡지 및 기타 미디어도 포함한다. 1994년 일본에서 첫 가정용 콘솔이 출시된 이후 전 세계적으로 확장되었으며, 1억 대 이상 출하된 최초의 콘솔이 되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가장 최근에 출시된 가정용 콘솔은 2020년 발매된 플레이스테이션 5다. 시리즈의 주요 컨트롤러 라인업은 진동 피드백 게임패드인 듀얼쇼크 시리즈이며, 플레이스테이션 네트워크, 플레이스테이션 스토어, 구독형 서비스 플레이스테이션 플러스 등 다양한 온라인 서비스를 운영한다. 플레이스테이션 네트워크는 2019년 12월 기준 월 1억 3백만 명 이상의 활성 사용자를 보유하고 있다. 플레이스테이션 스튜디오스 산하 다수의 퍼스트 파티 스튜디오를 통해 강력한 독점 게임 라인업을 갖추고 있으며, 지역별로 그레이티스트 히츠, 플래티넘, 에센셜, 더 베스트 등 다양한 저가형 재발매 라인업을 운영한다. △, ○, ×, □ 네 가지 상징적인 페이스 버튼과 수많은 마케팅 캠페인으로도 유명하다.[1][2][3]
역사편집이의 제기
기원
플레이스테이션은 소니의 하드웨어 엔지니어링 부문을 관리하던 임원 쿠타라기 켄(구타라기 켄)의 구상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나중에 "플레이스테이션의 아버지"로 불리게 된다. 1991년까지 소니는 비디오 게임 산업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으며, 닌텐도 슈퍼 패미컴용 사운드 칩 공급이나 소니 이미소프트라는 게임 스튜디오 운영 정도에 그쳤다.[2][3]
1988년부터 닌텐도와 소니는 슈퍼 패미컴의 CD-ROM 버전 개발을 위한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1991년 6월 소비자 가전 박람회(CES)에서 소니는 내장 CD-ROM 드라이브를 탑재한 슈퍼 패미컴인 "플레이 스테이션"(SNES-CD)을 공개했다. 그러나 발표 바로 다음 날 닌텐도는 소니와의 파트너십을 파기하고 필립스와 제휴한다고 발표했다. 수익 배분 방식에 대한 이견이 원인이었다. 이 결정에 소니 회장 오가 노리오가 격노했고, 쿠타라기에게 닌텐도에 대항할 플레이스테이션 프로젝트 개발을 맡겼다.[2][3]
이후 닌텐도가 필립스와의 제휴에서 소니에게 "비게임 역할"을 제안했으나 쿠타라기가 거부했고, 1992년 5월 협상이 공식 종료되었다. 1992년 6월 오가 회장, 쿠타라기, 소니 이사진이 참석한 회의에서 쿠타라기는 3D 그래픽 기반의 독자적인 CD-ROM 시스템을 시연했다. 오가 회장은 쿠타라기가 닌텐도로부터 겪은 굴욕을 상기시키며 프로젝트 유지를 결정했다. 그러나 회의 참석 다수의 강력한 반대와 구세대 경영진의 반발로 쿠타라기 팀은 소니 본사에서 별도 법인인 소니 뮤직으로 이동해 프로젝트를 이어가게 되었다. 이는 필립스와의 MMCD 개발 관계(훗날 DVD 개발로 이어짐) 유지를 위해서도 필요했다.[2][3]
초기에는 콘솔이 2D 스프라이트 그래픽에 집중할지 3D 폴리곤 그래픽에 집중할지 불확실했으나, 세가 버추어 파이터가 일본 아케이드에서 성공하는 것을 본 뒤 3D 폴리곤 그래픽이 주력 방향이 되었다. 플레이스테이션 로고는 마나부 사카모토가 디자인했으며, P와 S 글자에 깊이를 주는 대신 공간 속 글자를 암시하는 착시 효과를 사용했다. 빨강, 노랑, 초록, 파랑 네 가지 원색을 사용했으며 흑백 버전도 마련했다.[2][3]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 설립
1993년 11월 16일, 쿠타라기는 소니 뮤직 CEO 마루야마 시게오, 아키라 사토와 협력해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SCEI)를 설립했다. 소니 뮤직과의 파트너십은 창의적 인재 유치와 디스크 제조·마케팅·생산 지원에 큰 도움이 되었다. SCEI의 핵심 멤버로는 소니 본사 출신 테리 토쿠나카(사장)와 뉴욕 기반 소니 인터랙티브 엔터테인먼트 CEO 올라프 올라프손이 합류했다. 올라프손 산하에는 1994년 설립된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 아메리카(SCEA)가 있었다.[2][3]
플레이스테이션 프로젝트는 SCEI의 첫 공식 프로젝트로 1993년 소니 경영진의 최종 승인을 받았다. 같은 해 필 해리슨이 영입되어 개발자와 퍼블리셔 유치에 나섰으며, 훗날 SCE 월드와이드 스튜디오 사장이 된다. 1994년 3월 컴퓨터 게이밍 월드는 "소니 PS-X"가 연내 일본 출시 예정이며 가격은 400달러 미만일 것이라는 소문을 보도했다. 1994년 도쿄 호텔에서 열린 유통 계획 및 기술 시연회 이후 수많은 개발자가 플레이스테이션에 접근했으며, 서양의 일렉트로닉 아츠와 일본의 남코가 주요 파트너가 되었다. 카트리지 방식의 닌텐도 콘솔보다 저렴하고 제조가 쉬운 CD-ROM 기반 3D 콘솔이라는 점이 개발자 유입의 주요 요인이었다. 1994년 12월 일본 출시 후 경쟁작 세가 새턴보다 낮은 가격으로 대량 판매를 기록했으며, 북미와 유럽 출시 후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확산되었다.[2][3]
주요 게임·입점 정책편집이의 제기
플레이스테이션 스튜디오스 산하 다수의 퍼스트 파티 스튜디오가 플레이스테이션 콘솔 전용 게임을 개발해 강력한 독점 라인업을 형성한다. 지역별 저가형 재발매 라인업으로 그레이티스트 히츠(북미), 플래티넘(유럽), 에센셜, 더 베스트(일본) 등을 운영한다. 네 가지 상징적 페이스 버튼(△, ○, ×, □)은 브랜드 아이덴티티의 핵심 요소다. 마케팅 캠페인으로는 미국 "위대함이 기다린다(Greatness Awaits)", 궁극적으로 "놀이는 한계가 없다(Play Has No Limits)" 광고 등이 있다.[2][3]
온라인 서비스편집이의 제기
플레이스테이션 네트워크(PSN), 플레이스테이션 스토어, 구독형 플레이스테이션 플러스 등 온라인 서비스를 운영한다. 게임 외 엔터테인먼트 서비스도 제공 가능. PSN은 2019년 12월 기준 월 1억 3백만 명 이상 활성 사용자 보유.[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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