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 TV/수정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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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 개요
추가: 주식회사 후지 텔레비전(일본어: 株式会社フジテレビジョン)은 일본 간토 광역권을 방송 구역으로 하는 민영 텔레비전 방송국이다. 1957년 11월 18일 설립되어 1959년 3월 1일 본방송을 개시했다[1][2]. 후지 뉴스 네트워크(FNN)와 후지 네트워크 시스템(FNS)의 기국(基局) 역할을 수행하며, 후지 미디어 홀딩스의 완전 자회사이자 후지산케이 커뮤니케이션스 그룹의 핵심 기업이다[1][3]. 본사는 도쿄도 미나토구 오다이바의 후지 방송 센터(FCG 빌딩)에 위치한다[1][3]. 일본 5대 민영 방송국(닛폰 TV, TBS TV, TV 아사히, TV 도쿄와 함께) 중 하나로 꼽힌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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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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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 설립과 개국 준비 (1957~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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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1957년 우정성이 '텔레비전 방송 주파수 배분 계획 기본 방침'을 발표하며 도쿄·요코하마 지역에 민영 종합 텔레비전국 1국을 신설하기로 하자, 당시 도쿄의 두 민영 라디오국인 일본 문화 방송(JOQR)과 닛폰 방송(JOLF)이 미즈노 시게오(水野成夫) 문화 방송 사장의 조율로 출원 통합에 합의했다[3]. 양사는 '중앙 텔레비전(中央テレビジョン)' 명의로 종합 방송 면허를 공동 신청했고, 이후 도호의 '도요 텔레비전 방송(東洋テレビジョン放送)', 쇼치쿠의 '예술 텔레비전(芸術テレビジョン放送)'과 합병해 '후지 텔레비전(富士テレビジョン)'으로 명칭을 변경했다[3]. 1957년 7월 8일 방송 면허를 취득했고[3], 11월 18일 주식회사 후지 텔레비전으로 정식 설립되었다[1][2]. 창업자 중 한 명인 시카나이 노부타카(鹿内信隆) 전무가 "서민에게 사랑받아야 한다. 일본에서 유명한 것을 말하자면 벚꽃과 후지이므로 후지 TV로 하는 것이 어떠한가"라고 제안해 사명이 정해졌으나, 한자 '富士'의 획수가 많아 TV 화면에서 아이들이 알아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가타카나 'フジ' 표기로 변경했다(1958년 12월)[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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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신주쿠구 가와다초(河田町) 약 2만 평 부지에 사옥을 건립해 1959년 1월 20일 준공, 2월 8일 시험 방송, 3월 1일 호출 부호 JOCX-TV로 본방송을 개시했다[2][3]. 개국 당시 영상 출력 10kW, 음성 출력 2.5kW였으나 1960년 1월 17일 각각 50kW, 12.5kW로 증력했다[2]. 개국 초기에는 구형 TV가 6채널까지밖에 수신하지 못해 8채널인 후지 TV를 볼 수 없는 가구가 많았으나, 가전 메이커와 교섭해 12채널 VHF 수신기 대량 생산을 이끌어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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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 네트워크 형성과 컬러 텔레비전 시대 (1959~197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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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1959년 6월 도쿄·오사카·나고야·후쿠오카 4개 지역국 간 네트워크 협력 체제를 구축했고[2], 1966년 10월 후지 뉴스 네트워크(FNN)를 발족시켰다[2]. 1969년 4월 1일 일본 각지에서 13개 UHF국이 개국, 그중 8국이 FNN에 가맹했으며 같은 해 10월 후지 네트워크 시스템(FNS)도 정식 발족해 연말까지 가맹국 21개로 확대됐다[3]. 국제 협력도 적극 추진해 1960년 미국 NBC와 협정, 1969년 8월 11일 한국 문화방송(MBC)과 제휴 협정 체결, 1969년 9월 14일 문화방송 도쿄 지국을 후지 TV 가와다초 제1별관에, 10월 서울 지국을 문화방송 정동 사옥에 개설했다[2]. 대만에서는 타이완 TV(TTV) 설립을 지원하고 2006년까지 주요 주주로 참여했다[3]. 1963년 존 F. 케네디 암살 특집으로 일본 최초 태평양 횡단 위성 생중계를 실현했고, 1967년 뉴욕에 첫 해외 거점을 열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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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컬러 텔레비전 전환은 1964년 9월 3일 도쿄 올림픽 개막에 맞춰 시험 방송, 9월 7일 본방송으로 시작됐다(도쿄 3번째)[2]. 1967년 2월 11일 자사 스튜디오 제작 첫 컬러 프로그램 '맞혀라!(当てましょう!)' 방송, 1968년 첫 컬러 연속극 '작은 사랑과 로맨스(小さな愛とロマンス)', 1969년 아폴로 11호 달 착륙 순간을 컬러로 23시간 20분 특집 방송, 1970년 보도 스튜디오 컬러화 완료 순으로 진행됐다[3]. 1972년 1월 흑백 방송 중단 및 컬러화 완료, 1978년 10월 2일 음성 다중 실용화 시험 방송 개시, 1985년 12월 8일 문자 다중 방송 개시 등 기술 혁신을 이어갔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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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 '트리플 크라운'과 전성기 (1980년대~199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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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1980년 시카나이 노부타카 회장 사임 후 카우치 하루오(河内春夫)가 대대적 개혁을 단행, 슬로건을 '어머니와 아이의 후지 TV'에서 '즐겁지 않으면 TV가 아니다(楽しくなければテレビじゃない)'로 바꾸고 1981년 7월 첫 주에 TBS 시청률을 역전, 기국 사상 최초 '트리플 크라운'(전일·골든·프라임 전 시간대 1위)을 달성했다[3]. 1982년 4~9월 기국 광고 수입 1위, 1987년 하이비전(고화질 TV) 기술 연구 개시 등 전성기를 구가했다[3]. 1986년 4월 1일 후지산케이 그룹 통일 CI 도입에 따라 로고를 기존 '채널 8' 마크에서 '눈(Eye)' 마크로 변경했고[2][3], 같은 해 닌텐도와 협업해 패미컴용 '올 나이트 닛폰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유메코조: 도키도키 패닉'(후에 '슈퍼 마리오 USA' 기반이 됨)을 제작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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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심야·조기 시간대 브랜드 'JOCX-TV2'(1987년 10월~), 'JOCX-TV+'(1989년 10월~), 'GARDEN/JOCX-MIDNIGHT'(1991년 10월~), 'JUNGLE'(1992년 10월~), 다시 'JOCX-MIDNIGHT'(1993년 10월~1996년 3월)로 변경하며 젊은 크리에이터 실험작을 편성했다[3]. 대표작으로 '즈이킨 잉글리시(ズイキン・イングリッシュ)'(1992년 봄) 등이 있다[3]. 영국 애니메이션 '토마스와 친구들' 제3시리즈 공동 제작에도 참여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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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 오다이바 이전과 디지털 전환 (1990년대~201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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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1984년 3월 오다이바 사옥 이전 구상 발표, 1994년 11월 착공, 1996년 8월 신사옥(후지 방송 센터) 완공, 1997년 3월 10일 본사 기능 완전 이전 및 송출 테스트, 3월 15일 구 가와다초 사옥 해체 착수[2]. 1997년 이전은 당시 거의 공터였던 오다이바 지역 개발의 기폭제가 됐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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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위성·디지털 방송: 1998년 4월 CS 디지털 방송 2채널 위탁 사업자 인정, 4월 '후지 TV 721'(현 후지 TV TWO), 1999년 4월 '후지 TV 739'(현 후지 TV ONE) 개국[2]. 2000년 12월 1일 BS 디지털 'BS후지' 개국[2]. 2003년 12월 1일 지상 디지털 본방송 개시(JOCX-DTV, 21ch, 10kW, 리모컨 키 ID 8)[2]. 2006년 4월 1일 원세그 본방송 개시[2]. 2007년 9월 1일 하이비전 방식 보도 취재 전면 도입[2]. 2011년 7월 24일 지상파 아날로그 방송 종료, 디지털 전환 완료[2]. 2013년 5월 31일 도쿄 스카이 트리 송출 개시[2]. 2015년 3월 31일 BS 난시청 지역용 지상파 동시 방송 중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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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 경영 구조 개편과 최근 동향 (2000년대~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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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2005년 9월 1일 닛폰 방송과 주식 교환으로 닛폰 방송을 자회사화[2]. 2008년 10월 현행 주식회사 후지 텔레비전 설립(구 후지 TV가 후지 미디어 홀딩스로 사명 변경 후 방송 사업을 신설 분할)[3]. 2010년대 이후 시청률이 급락해 기국 가구 시청률 5위로 하락했으나, 방송 외 부문 수입 비중이 일본 TV 업계 최고 수준으로 다각화돼 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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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 발생 시 정규 방송 중단 및 재난 속보 체제 전환, 총리 회견 중계 중 스태프 부적절 발언 송출 사고(3월 12일) 발생, 9일 후 홍보부 해명[2]. 2019년 7월 25일 한국 대학생 단체가 서울 상암동 MBC 사옥 내 후지 TV 서울 지국에서 논설위원 발언 항의 기습 시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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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2025년 1월 17일, 2023년 6월경 나카이 마사히로(中居正広)가 전직 후지 TV 아나운서 와타나베 나기사(渡邊渚)에게 성폭행을 가했다는 의혹 보도와 기자회견 파문으로 신용 타격, 도요타·세븐일레븐·이토요카도·기린·닌텐도·맥도날드 등 주요 스폰서 광고 대거 철회, '메자마시 TV' 등 전 프로그램 CM 슬롯이 AC 재팬 공익 광고로 대체되는 사태 발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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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 사업과 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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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 본사·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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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 **현 본사**: 도쿄도 미나토구 다이바 2-4-8 후지 방송 센터(FCG 빌딩)[1][3]. 1997년 3월 10일 이전 완료[2].
추가: - **구 본사**: 도쿄도 신주쿠구 가와다초(1959~1997). 1997년 3월 15일 해체 착수, 2003년 3월 부지 고층 맨션 준공[2].
추가: - **부속 시설**: 시어터몰(1층), 스튜디오 프롬나드(5층, 세트 견학), 후지 TV 캐릭터 숍(7층, 피시랜드·CX JOCX-TV Store·드림 메이커), 규타이 덴보시쓰(25층 전망대, 후지산 조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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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 자회사·계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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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자료 [1] 기준 주요 자회사: 쿄도 텔레비전(共同テレビジョン), 후지 크리에이티브 코퍼레이션, Fuji Media Technology, 후소샤(扶桑社), dinos. 자료 [2] 추가 정보: 닛폰 방송(2005년 자회사화), BS후지, 후지 TV ONE/TWO/NEXT 운영사, FOD(스트리밍 서비스) 등. 산케이 신문은 후지산케이 그룹 내 별도 법인이나 그룹 핵심 매체로 긴밀히 연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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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 운영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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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 편성 비중이 타사 대비 높아 정파(방송 휴지)를 거의 실시하지 않으며, 심야 종료 시 'MUSIC WEATHER'(PV+날씨, 관동 로컬) 자체 방송[2].
추가: - 여자 아나운서를 버라이어티 등 예능 프로그램에 타사보다 적극 기용[2].
추가: - 노조 영향력이 도쿄 민영 방송국 중 낮은 편[2].
추가: - 사원 채용 주로 인터넷 실시, 유명인·대기업 경영자 자녀 입사 다수[2].
추가: - 1969년 여사원 25세 정년제 철폐 투쟁 당시 전 여직원 붉은 장미 달고 항의[2].
추가: - 1970년대까지 아동·주부 대상 편성 중심이었으나 1981년 대대적 편성 노선 변경으로 현행 포트폴리오 정착[2].
추가: - 자사 프로그램 빈출 연예인·열성 시청자 통칭 '후짓코(フジッコ)'[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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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 논란·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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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 보도·편성 성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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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보수적 성향이 강하며 산케이 신문 영향 하에 반공·보수·친미 노선 견지, 진보 성향 아사히 신문 계열 TV 아사히로부터 비판받는 구도 존재[2]. 다만 일부 보수 우파로부터도 비판 대상이 된다는 지적도 있음[2]. 버라이어티·드라마 평판 양호하나 보도 프로그램 평판은 좋지 않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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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 주요 비판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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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 1998년 BRC 인권 배려 불충분 지적 수용 거부
추가: - 2003년 오 사다하루 변기 콩트·분유 콩트 연쇄 파문
추가: - 2006년 중화민국 국기 오보·이산가족 상봉 오보
추가: -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총리 회견 중 스태프 발언 송출
추가: - 2019년 논설위원 발언 관련 한국 내 항의 시위
추가: - 2025년 나카이 마사히로 성폭행 의혹 대응 미흡·스폰서 대량 이탈·광고 공익 광고 대체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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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이들 사례로 "방송 윤리·인권 감수성 부족", "위기 관리 능력 부재", "조직 문화 폐쇄성" 등 비판이 반복 제기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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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 그 밖의 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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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 캐치프레이즈 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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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개국 당시 '밝은 가정에 즐거운 TV'(1959) → '어머니와 아이의 후지 TV'(1960) → '청춘은 8비트 불타는 가을의 후지 TV'(1979 가을) → 'TV 카르사마 8 채널'(1981 여름) → '이번 봄에도 재미있는 왕국 후지 TV'(1983 봄) → '연말도 정월도 재미있는 로망 후지 TV'(1983 가을) → '8채널은 TV의 모험왕입니다'(1986 가을) → '꿈이 피어나는 안내인. 봄의 후지 TV'(1987 봄) → '슈퍼 TV 선언 후지 TV'(1987 가을) → '신세를 진 그 사람에게, 후지 TV'(1987 연말) → '4월부터 후지 TV를 주목하자'(1989 봄) → '가는 변화, 오는 변화'(1989 연말) → '변화신년'(1990 1월) → '철학'(1992 후반) → '서비스라는 건 무엇입니까?'(1993) → 'TV라고..'(1994 전기) → 'PUSH'(1994 후기) → '후지 TV가 있어요.'(1995) → '불러라, 후지 TV의 노래'(1996) → '오다이바 채널 후지 TV'(1997) → '다시 만나요'(1997) → '진짜?후지'(1999) → '후지테레비긴'(2000) → '잡았다! 후지 TV'(2001) → '계기는, 후지 TV'(2002~2005, 2008) → '조금 해피→작은행복 계기는 후지 TV'(2006) → 'HAVE YOUR MEASURE 계기는 후지 TV'(2007) → '50스!!'(2009) → '5539(Go Go Thank you!)'(2013) 등[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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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 로고 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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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1959년 개국~1986년 3월 31일: 채널 번호 8 기반 로고 사용[2]. 1986년 4월 1일 후지산케이 그룹 통일 CI '눈(Eye)' 마크로 변경[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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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 채널 번호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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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개국 희망 1번 채널은 NHK 선점으로 8번 채널 배정[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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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 도쿄도 내 타 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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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NHK 방송 센터, TBS TV(JNN 기국), TV 아사히(ANN 기국), 닛폰 TV(NNN·NNS 기국), TV 도쿄(TXN 기국), 방송대학학원, TOKYO MX 등[2]. 라디오는 문화 방송(NRN), 닛폰 방송(NRN), TBS 라디오(JRN), FM도쿄(JFN), J-WAVE, FM인터웨이브(MegaNet) 등이 본사 소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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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 관련 이슈·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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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후지산케이 그룹, 산케이 신문, 산케이 신문 지국장 명예훼손 혐의 사건, 일본회의, 후지 TV 항의 데모(2011년 후지 TV 데모), 일본의 우익 단체, 행동하는 보수 등[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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