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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 개요
추가: 벌통(beehive)은 꿀벌이 서식하며 새끼를 기르고 꿀을 생산하는 밀폐된 구조물이다. 과학적·전문 문헌에서는 벌집(nest)과 구분하여, 벌집은 벌 무리가 자연적·인공적 공동이나 노출된 구조물에 스스로 짓는 집을 뜻하고, 벌통은 인간이 꿀벌 사육을 목적으로 만든 인공 구조물을 지칭한다.[1][2][3] 양봉꿀벌(Apis mellifera)과 재래꿀벌(Apis cerana) 두 종이 주로 인공 벌통에서 사육된다.[2][3]
추가: ## 역사
추가: ### 고대의 벌통
추가: 벌을 인공 구조물에서 기른 기록은 고대 이집트 제5왕조(기원전 2422년 이전) 니우세르레의 태양 신전 벽화에서 확인된다. 일꾼들이 연기를 불어넣으며 벌집을 채취하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2][3] 제26왕조(기원전 650년경) 파바사의 무덤 비문에는 항아리에 꿀을 저장하는 장면과 원통형 벌통이 그려져 있다.[2][3] 이스라엘 텔 레호브 유적(기원전 900년경)에서는 점토와 마른 지푸라기로 만든 원통형 벌통 30여 기가 정돈된 열로 발견되었으며, 본래 100여 기 규모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높이 약 80cm, 너비 약 40cm의 3단 구조였다.[2][3] 하이파 대학교 에즈라 마르쿠스는 근동 지역의 문자와 미술에서도 고대 양봉 흔적이 나타난다고 지적하며, 풍요의 여신상과 함께 벌통이 출토된 점은 양봉이 종교적 관습과 연관되었음을 시사한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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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 전통 벌통
추가: 전통 벌통은 벌 군집을 감싸는 단순 용기였다. 내부 구조물이 없어 벌들이 스스로 벌집을 지었으며, 벌집들이 서로 교차 부착되어 이동 시 파괴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 '고정식 틀(fixed-frame)' 벌통이라 하며 현대 '이동식 틀(movable-frame)' 벌통과 구별된다.[2][3] 꿀 채취는 벌통을 으깨 압착하는 방식이 주를 이루어 밀랍은 많이 얻었으나 꿀 수율은 현대에 비해 낮았다.[2][3] 상자형 벌통으로 점차 변화하다 현대 장비로 대체되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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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 진흙 벌통·진흙 타일 벌통
추가: 진흙 벌통은 이집트와 시베리아에서 현재까지 쓰인다. 진흙·짚·똥을 섞어 긴 원통형으로 만든다.[2][3] 진흙 타일 벌통(구운 점토 원통)은 고대 이집트·중동·그리스·이탈리아·몰타 등 지중해 동부에서 관습적으로 사용되었다. 여러 기를 나란히 쌓고 차양을 설치해 사용했으며, 꿀 채취 시 연기로 벌을 한쪽 끝으로 몰아냈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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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 짚 벌통(skep)
추가: 바구니를 엎어놓은 형태의 짚 벌통은 약 2000년간 사용되었다. 초기에는 진흙·똥을 바른 위커 세공이었으나 중세 이후 짚·풀·지푸라기 꼬임으로 바뀌었다. 북유럽·서유럽에서 바닥 중앙에 단일 출입구를 두었다.[2][3] 내부 구조가 없어 벌집이 안쪽에 부착되었으며, 질병·해충 검사가 불가능하고 꿀 채취 시 군집을 파괴해야 하는 단점이 있었다.[2][3] 벌을 유황으로 질식시키거나, 벌통 위아래에 '캡(cap)'·'이크(eke)'라 부르는 연장 구조물을 달아 꿀만 든 벌집을 유도하기도 했다.[2][3] 18세기 후반에는 나무 뚜껑 구멍 위에 유리 항아리를 얹어 벌집을 항아리 안에 짓게 한 상업적 디자인도 등장했다.[2][3] 1998년 이후 미국 대부분 주에서 질병 검사 불가 이유로 사용이 금지되었다.[2][3] 짚 벌통 제작자를 '스켑퍼(skepper)'라 부르며, 영국에서는 가죽 고리 '거스(girth)'로 짚 코일 굵기를 조절하고 가시나무 껍질로 꿰맸다.[2][3] 짚 벌통 형상은 그림·조각·고문서에 자주 등장하며 '부지런한 벌'을 상징하는 산업 표지로 쓰였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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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 나무 구멍 벌통(gum, barć)
추가: 미국 동부·남동부에서는 20세기까지 흑고무나무(Nyssa sylvatica) 속이 빈 줄기('검스')를 벌통으로 썼다. 벌 마당에 수직으로 세우고 널빤지 덮개 아래 막대기를 걸쳐 벌집 부착을 도왔다.[2][3] 짚 벌통과 마찬가지로 채취 시 군집을 파괴했으며, 유황 연기로 벌을 죽이고 벌통을 열었다.[2][3] 중부 유럽에서는 자연·인공 나무 구멍을 널리 이용했다. 폴란드 '바르치(barć)'는 비·서리·딱따구리·곰·솔담비·숲겨울잠쥐로부터 군집을 보호했으며, 보호용 나무 덮개만 떼고 연기로 잠시 진정시킨 뒤 꿀을 채취해 군집을 보존했다.[2][3] 스페인에서는 코르크 나무껍질 원통('콜메나스 데 코르초')을 현재도 사용한다.[3] 프랑스 몽로제르 등지에서도 짧은 규격의 인공 굴착 통나무 벌통을 써서 꿀을 차별화·고가 판매한다.[2][3] 나무 구멍 벌통은 양봉꿀벌·재래꿀벌 외 다양한 벌 종이 스스로 벌집(꿀·꽃가루 저장방, 육아방)을 구성할 수 있게 한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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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 기타 전통 형태
추가: 뉴질랜드 마오리 양봉가는 유럽 꿀벌 도입 후 전통 바구니 짜기 기술(kete)을 응용해 짚 구조 벌통을 만들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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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 근대 벌통의 태동
추가: 18세기 후반 토머스 와일드만(1768~1770)은 짚 벌통 위에 평행 나무 막대 7개를 얹어 벌집을 고정하고, 다층 적재로 상층 꿀만 채취해 벌을 살리는 방식을 기술했다. '슬라이딩 프레임' 개념도 제시해 이동식 틀 벌통을 예고했다.[3] 1814년 우크라이나 페트로 프로코포비치가 최초의 벌통 프레임을 발명해 채밀을 용이하게 했다.[3] 1845년 얀 지에르존이 벌집 중심 간격 1.5인치(38mm)를 제시하고, 1848년 벌통 측벽에 8mm×8mm 홈('벌 간격, bee space')을 파서 상단 막대 이동을 편하게 했다.[3] 이를 바탕으로 1852년 5월 아우구스트 아돌프 폰 베를레프슈(튀링겐)와 10월 로렌초 랭스트로스(미국)가 각자 이동식 틀 벌통을 설계했다. 랭스트로스는 프레임 상단 위 13mm, 프레임 사이·벌통 벽 사이 9.5mm 간격을 썼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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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 기능과 사용법 개요
추가: ### 용도
추가: 벌통은 △벌꿀 생산 △인근 농작물 수분(受粉) 지원 △봉침 치료용 벌 사육 △군집 붕괴 현상(CCD) 완화 등에 쓰인다.[2][3] 북미에서는 개화 시기에 맞춰 벌통을 농장 간 이동시켜 다양한 작물 수분을 돕는다.[2][3]
추가: ### 내부 구조
추가: 벌통 내부는 벌밀랍으로 된 육각기둥 세포가 빽빽이 모인 벌집(honeycomb)으로 채워진다. 세포는 먹이(꿀·꽃가루) 저장소이자 알·유충·번데기 육아방 구실을 한다.[3]
추가: ### 자연 서식지 선호도
추가: 서양꿀벌은 약 45L(10~100L 범위) 공동을 선호하며, 지상 1~5m 높이, 입구는 아래향·적도향, 모군에서 300m 이상 떨어진 장소를 택한다. 입구 주변 수피를 매끄럽게 다듬고 내벽을 프로폴리스 얇은 층으로 코팅한다. 벌집은 공동 상단·측면에 부착하되 가장자리에 통로를 남긴다. 위쪽부터 꿀 저장방, 꽃가루 저장방, 일벌 육아방, 수벌 육아방 순서로 배치되며, 여왕벌 방은 벌집 하단 가장자리에 땅콩 모양으로 지어진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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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 평가
추가: ### 특허 분쟁
추가: 한때 벌통 디자인 특허권을 둘러싸고 많은 분쟁이 있었다.[2] 1852년 10월 5일 랭스트로스가 미국 특허를 받았으며, 여러 벌통 설계가 특허로 등록되었다.[3]
추가: ### 현대적 평가
추가: 전통 벌통(진흙·짚·나무 구멍)은 질병·해충 검사 불가, 채취 시 군집 파괴, 꿀 수율 저조 등으로 현대 양봉에서 대부분 이동식 틀 벌통(랭스트로스·탑바·와레 등)으로 대체되었다.[2][3] 다만 나무 구멍 벌통은 다양한 벌 종 수용, 군집 보존 채취 가능, 제품 차별화·고가격 형성 장점으로 일부 지역(프랑스 몽로제르, 스페인, 폴란드 등)에서 현재도 이용된다.[2][3] 짚 벌통은 1998년 이후 미국 대부분 주에서 법적으로 금지되었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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